노오경 <For Better Life (배러라이프를 위하여)>전

영험한 샘, 최고수를 찾아 떠나다

유병준(서울대학교)




서울 강북구 도봉로 82길 10-5. 친구가 알려준 좌표를 찾아 떠난다. 4호선 수유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 생각보다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초조하다. 나보다 먼저 사람들이 도착했으면 어쩌지. 내 몫이 남아있지 않으면 어쩌지. 먼 길을 애써 왔는데, 헛걸음을 한 것은 아니겠지.


방황하는 도중 찾은 입구로 들어가니, 작고 어두컴컴한 공간이 나온다. 외부의 빛이 차단된 곳, 빔 프로젝터 두 대에서 방출된 인터뷰와 광고의 연속된 섬광이 스크린을 두들긴다. 푸른 빛이 감돈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 드디어 도착했다; 지하 깊숙이 숨겨진 약수터에.


‘최고수(Choigo-Water)’의 영험한 샘이 전시장 한 가운데서 방문자들을 반긴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철제 난간을 바라본다. 먼저 다녀간 순례자들이 본인들의 크고 작은 소망을 제각기 써 놓은 노란 리본들을 철제 난간에 묶어 놨다. 개인의 성공, 가족의 건강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따사로운 소원들이 마치 꽃에 잠시 앉은 노란 나비 같다.





choigo water fountain


휴, 다행이다. 내 몫의 ‘최고수’ 정도는 남아있는 것 같다. 아, 최고수가 도대체 뭐냐고?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험하기로 입소문이 난 ‘신비의 약수’이자 ‘하늘 영험수’이다. 전설에 따르면, 최고수는 다음과 같은 설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21년 5월, 노오경 선생이 대중에게 설파할 진리를 강구하던 끝에 하늘께 목 놓아 깨끗한 정수 (淨水)가 쏟아났습니다. 이때부터 선생은 아녀자 사이에서 내려오는 영험한 물의 조합(組合)들을 밤낮 없이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믿음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효험을 발휘하는 영천, 최고수가 탄생하였습니다.”



참으로 비범하지 않은가? 이 물을 마시기만 한다면,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믿지 않는 자에게 하늘이 영험함을 보여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살균, 향균 효과를 누릴 수 있고, 다이어트를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내부 장기를 정화하는 디톡싱, 건강 증진과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암 투병을 하던 중 소천하신 울 외할아버지도, 살이 빠지지 않아 고민 중인 주변 친구들에게도, 입시를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후배들도 이 ‘최고수’를 일찍 접했더라면 마냥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나의 게으름과 부족한 정보력 때문에 이런 영험한 효과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 짜증날 따름이다.



‘배러 라이프 (Better Life)’ 그래, 최고수는 나에게 분명 더 나은 삶을 제공해줄 거야. FDA 승인도 받았다잖아. 사이비 아니냐고? 무슨 소리야, 과학적으로 검증도 되었다는데. 그런 식으로 반문하고 의심하면 못 써. 기껏 좋은 물 떠다 줬는데 영험함 다 사라질 부정 타는 소리하면 어쩌자는 거야?




최고수 설명하는 어휘와 문장의 변천사, 혹은 연령별 맞춤형 접근



1. 옛날 옛적에, 혹은 50대를 겨냥해 지하철 화장실 소변기 위에 놓여진 발기부전 치료제 광고 같은.

신비의 약수, 하늘 영험수, 자연의 축복, 미국 FDA 검사, 대한민국 천연 약수, 목 놓은 기도 응답한 천사 님의 에덴 쉼터, 내지인만 출입한 사우나의 첫 새벽물


2. 여전히 옛날의, 혹은 추어탕 집에 걸려 있는 <추어탕의 효능>에서 법한 문구와 이미지 류의.

    '귀한 몸에는 귀한 물!'

    1) 신진대사 촉진에 도움을 줍니다
    신성수에 담긴 마그네슘, 칼륨, 칼슘과 같은 미네랄은 근육 기능유지, 치아형성과 등 아이의 성장발달에 아주 중요한 필수요소입니다


    2) 다이어트에 도움을 줍니다
    미네랄 성분은 활발한 신진대사에 도움을 주어 기초대사량을 높이고 다이어트 시 도움이 됩니다

    3)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신성수에 대한 국내외 시험에서 비만, 동맥경화,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과 개선 여부를 체크하였습니다


3. 뭔가 트렌디한, 인스타그램이나 홈쇼핑에서 쯤을 봤을 법한 영상






최고수: 신성과과학이 공존하는 세상, 그리고 상품화의 키치



최고수의 영험한 샘물이 흘러나오는 어두컴컴한 공간은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동굴 속 깊숙이 숨겨진 약수터의 면모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 엑스포 전시관으로서의 면모다. 가장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속성과 가장 명료하고 합리적인 공간을 절묘하게 겹치는 데 성공한 노오경은, 참으로 이색적인 분위기-그러나 계속 곱씹을수록 생각보다 친숙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신성성과 과학성이 어떻게 한 시공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인가?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이 공간은 비밀스러운 약수터이고 과학 엑스포 전시관의 탈을 쓴 모델 하우스, 혹은 상품 홍보관이다. 신성한 것도, 과학적인 것도, 사실 이곳에서는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다. 상품화의 실크 스크린을 통해 찍어낸 신성함과 과학스러움의 이미지 속에는 듣기 좋은 공허한 말들만 남기 때문이다. 이 모든 광고의 목적은 해당 제품의 신성성이나 과학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팔릴 만한’ 이미지를 형성하게끔 하는 것, 그것만이 광고의 존재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성만을 강조하는 이미지도, 과학성만을 강조하는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살펴보자:

“신비의 약수, 하늘 영험수, 자연의 축복”과 같은 어설픈 신성함의 어휘를 사용하는 초창기 광고 속에도 “미국 FDA 검사. 최고수의 효능”과 같이 과학스러움을 나타내는 언어가 섞여있다. 조금 더 효능에 집중한 다음 이미지 광고에서도, 어김없이 신성한 천사의 이미지가 섞여있고, divine과 같은 단어들이 사용된다. 영상 속에서도 연구실에서 뭔 DNA를 연구하는 스톡 영상과 함께, 신성하고 자연의 정기를 받은 것을 강조하는 듯한 영상들이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최고수의 ‘영험함’은 순수하게 신성함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도 아닌, 그저 더 많이 팔기 위해 신성성과 과학성의 이미지를 마구잡이로 혼합한 상품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수: 배러라이프 (Better Life) 위하여



이런 상품성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완전히 신성성에 기반하지도, 온전히 과학성에 기반하지도 않은 이 걸쭉한 융합체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노오경은 그것이 ‘배러 라이프(Better Life)’를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라고 진단한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은 늘 우리의 중심에 있다. 때로 우린 사주를 보거나,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거나, 108배를 하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신성함에 의지한다. 때로 우리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무엇이 합리적인지 고민하며 최대한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고자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가치들이 섞인 상태로 우리들 각자는 배러 라이프를 쫓는다는 것이다.


우리들 본인조차도 어떤 가치들이 얼만큼, 어떤 비율로 섞였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굳이 내가 인지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상품화와 마케팅은 소비자들을 대신해 그 황금비율을 고민하며 우리와 공명하고자 노력한다. 적절한 정도의 과학성과 신비함, 적절한 정도의 위로와 채찍질, 적절한 정도의 희망과 공포를 기가 막힐 정도로 뒤섞어 우리에게 제시한다.


최고수 마케팅은 신성함과 과학스러움 사이를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가치로 켜켜이 쌓인 우리들의 내면세계에 공명하는 최적의 배합을 찾아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썩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신성함의 세계에도, 과학의 세계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최고수의 구호는 공허한 세일즈용 캐치프레이즈로 휘발될 뿐이다. 비단 최고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배러 라이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신성성 혹은 ‘진정한’ 과학성을 회복하는 본질주의가 정답인가? 각 세계관의 순수함을 회복하고자 혼합된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가?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노오경 작가의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인류학적패러디: 희화화가 아닌, 이해를 목적으로 진행하는 패러디



노오경의 최고수 프로젝트를 ‘자본주의와 상업화의 패러디’로 이해해볼 수도 분명 있겠지만, 불충분한 설명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찝찝함이 맴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와 상업화의 패러디’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편으로는 그 체제 속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이 경우에는 최고수의 광고성 이미지를 신뢰하고 소비하는 수많은 존재들까지 뭉뚱그려 ‘비웃음을 살 만한’ 이들로 냉소하는 차가운 행위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희 또한 자유롭지 않아. 너희는 사이비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야. 과학이고 신성함이고 뭐고, 지금까지 너희들은 다 속고 있었어! 이런 류의 재수없는 선지자의 페르소나를 쓴 오만한 작가들을, 우리는 자본주의의 탄생 아래 얼마나 수없이 목도해왔던가.


최고수 프로젝트가 이런 비웃음과 한심한 시선만으로 가득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된 결정적 근거는, 노오경이 전시장 한 켠에 상영하고 있던 인터뷰 영상이었다. 최고수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한국의 종교 탈출자 두 명의 인터뷰를 담아낸 10분 가량의 영상. 인터뷰 참여자들은 여기서 옛날에 자신이 ‘사이비’에 심취해 신성한 물을 돈 주고 가져오던 일화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당시에는 무엇보다도 진심 어린 희망에 엮어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Better Life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때때로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측면들, 그러나 그 기저에 있는, 미워하고 냉소할 수만은 없는 소망과 희망의 단면들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이 영상 작업은 노오경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일관된 주제의식과도 연관 되어있다.


최고수 프로젝트가 진열된 전시장 2에서 올라와 들어가는 전시장 1에는 ‘1인 자취 비율이 높은 서울 관악구에서 진행한 <공든 탑 쌓기> 워크샵을 재맥락화한 전시가 이뤄진다…… 소망을 담아 공들여 쌓은 참여자들의 탑들은 작가의 사진 아카이빙과 스캔된 텍스트, 가상 소설에 재형상화되었다……” 최고수 프로젝트에서도 드러난 인간의 비합리성 혹은 신성성을 탑 쌓기라는 행위를 통해 긍정적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노오경. 그는 분명 냉소와 거리두기라는 쉬운 길만을 선택하지 않고, 그들의 다양한 속성을 포용하기 위해 그들 한 가운데로 뛰어들고자 하는 기질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인류학적 패러디’. 나와는 다른 존재들을 단순 희화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심도 있게 진행하는 패러디의 가능성을 노오경을 증명한다.





전시장을 나가며, 리본을 묶다



‘최고수(Choigo-Water)’의 영험한 샘이 전시장 한 가운데서 여전히 방문자들을 반긴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철제 난간을 바라본다. 먼저 다녀간 순례자들이 본인들의 크고 작은 소망을 써 놓은 노란 리본들을 철제 난간에 묶어 놨다. 개인의 성공, 가족의 건강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따사로운 소원들이 마치 꽃에 잠시 앉은 노란 나비 같다.


노란 리본을 하나 집어 든다. 펜 뒤쪽을 누르니 ‘찰칵’ 소리가 나며 심지가 튀어나온다. 소망을 적는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정말 최고수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느냐고? 물론 그렇지는 않다……99%는 그렇게 믿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적어서 손해볼 일은 없겠지 생각하며 리본 매듭을 묶는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먼저 다녀간 순례자들과 나는 얼마나 다른가? 나는 최고수의 세일즈에 무기력하게 넘어간, 또다른 하나의 보잘 것 없는 개인에 불과한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다짐하며 전시장을 나간다.